나의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그냥이다.
사람에 대한 기억을 써놨는데 하나씩 지워나갈 것이다.
지우는 것은 내가 아무렇지 않아짐을 느꼈을 때.
추가도 된다. 미련때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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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약 1년 가까이 내 차로 편도 1시간 거리를 달려 출퇴근을 같이 했다.
나의 보금자리는 정반대였으나 뭐, 그랬다.
4. 그러다 유가가 폭등을 했다. 기록에 의하면 난 두세배는 지출이 늘었다.
나는 벌이가 많지 않았고 연애를 하다 보니 알게 모르게 씀씀이도 커졌다.
그래서 용기내어 함께하는 출퇴근을 주 2회 정도 줄이면 어떻겠냐고 했다. 정적과 싸늘함.
그 말을 하는 내 자신이 마치 큰 죄를 지은 것 같았다. 그런 식이었다. 아빠가 죽고 나서야 안하게 된 거 같다.
5.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석사를 한다고 하니 야망이 있다고 했다. 칭찬인 줄 알았고, 뿌듯했다.
주1회 가는 대학원 생활을 그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 보고해야 했다. 대학원 생활뿐만 아니라 회사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이 끝나면 보금자리와 차라리 가깝던 대학원에서 다시 그를 만나러 러시아워를 견디고 가야 했다.
아픈 날에 난 그 러시아워를 견뎌 그를 만나러 가기 정말 힘들었고 그냥 집에 가버렸다. 많이 다퉜다.
웃긴건 본인집에 도착했을 때 본인이 차가 막혀서 늦는건 허용인 것이다. 난 그 멀리서 와서 늦으면 죄인이다.
6.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걸 하자고 했다.
사랑을 들먹였다. 그럼 졌다. 참 마음이 아팠다.
7. 내가 있음에도 싫어하는 사람이 껴있다며 밥을 같이 먹기 싫다며 친한 여직원과 밥을 먹으러 가버렸다. 연애초 그 여직원과 밤늦게 통화한다고 2시간동안 연락이 안 되었던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긴건지 전전긍긍했던 내가 너무 허무했던 적이 있다. 퇴근하고도 그 여직원 전화가 왔다. 그때도 많이 다퉜다. 그 여직원 외모 평가를 그렇게 해댔으면서, 한편으로 대단하다. 그렇게 사람 외모, 성격평가를 해대고 앞에선 친절한 척. 어떤 기분일까.
8. 그렇게 본인은 본인 사회생활에 타격없게 지내며 내 인생을 초토화시켰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을 싫어했고 나는 그렇게 철저하게 사회생활 고립에 빠졌다. 그나마 다행인게 누군가는 그런 사람인 걸 안다는 것이다.
9. 헤어진 이유에 대해 나의 외로움과 불면증에 대해 토로했음에도 그렇게 헤어졌다.
내가 그만하자고 한 건 내 힘듦을 알아봐줬음 했었다.
그러나 헤어짐을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헤어졌다. 각서를 쓰게 한 적이 있었는데 아빠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가 각서를 지키지 않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10. 가끔 생각난다. U턴, 아빠의 죽음에서도 받아야 하는 의심, 소리지르기, 내탓이 아닌대도 나에게 퍼붓기.
11. 나는 잠을 (잘) 자는 것을 포기했다. 우는 것을 참는 것도 포기했다.
지금 일상은 사실 엉망이다. 업무 중에 불면, 불안으로 인해 화가 치미면 울다가 연차를 쓴다.
이런 나를 안 짜르는 것에 감사해야 하나 싶다.
12. 그 사람의 양면적인 모습을 볼 때 나는 약을 먹는다. 스스로 견딜 수가 없다.
조만간 내가 스스로를 더 못살게 굴지 않길 바랄 뿐이다.
만약에 내가 모자란 선택을 한다면 아빠, 엄마가 그리워서 라고 변명을 해보겠다.
잠을 못자니 수면제를 더 처방해달라고 했지만, 원칙상 더 줄 수 없다고 하셨다.
편하게 자고 싶다. 자고 일어나서도 개운하고 싶다. 불안하게 깨고 싶지 않다.
수면제는 개운하게 일어나지 못한다. 어지럽다. 그런데 잠도 잘 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나는 지금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다.
자가면역질환에도 불면증, 우울증, 불안장애에도.
그리고 아빠, 엄마가 없어도.
지금 나는 내가 많이 외로운 것을 너무나도 잘 인지한다.
소확행이든 뭐든 와닿지 않고 있다.
극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겠다.
주위에서 도와주는 것도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내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데, 어렵다.
그를 많이 생각하는, 생각해줬다던 사람을 절대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한텐 나만큼 자신을 위해줬다는 사람이 없었다고 했는데 진짜 없었을지도.